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문단 편집) == 예외 지역 == [[파일:오스만 종교.png]] [[1907년]] [[오스만 제국]] 내 [[무슬림]] 비율. [[보스포루스 해협|보스포루스]] 양안 일대의 무슬림 비율은 여전히 절반 이하였다. 양측 합쳐 200만 명의 인구가 이동하는 상황 속에서 예외적으로 [[이스탄불]]과 [[마르마라 해]]의 프렌스 군도, [[튀르키예]]로 편입된 [[에게 해]]의 두 섬, 임브로스와 테네도스에 거주하던 30만 명 가까이 되는 [[그리스인]]들은 협약에 따라 인구 교환 대상에서 제외되어 당장 추방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튀르키예 당국이 그리스인들에게 여러 가지 불이익[* 그리스인이 취업 가능한 직업의 제한, 그리스인에게만 부과되는 부유세, 1934년 통과된 성씨법에 따라 창씨를 할 때 외국계 성씨는 배제하고 오로지 튀르키예식 성씨로만 창씨할 것, 그리스인 학교에서 [[그리스어]]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튀르키예어]]로만 진행할 것을 강요하는 등.]을 주는 형식으로[* [[로잔 조약]]에서 양국은 각국에 남은 이들의 신앙 및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지만 아타튀르크 정부나 이뇌뉘 정부나 멘데레스 정부나 하나도 안 지켰다.] 자발적으로 튀르키예를 떠나도록 유도한 데다 결정적으로 [[1950년대]] 튀르키예 민관의 조직적인 박해(이스탄불 [[포그롬]])으로 인해 급격히 그리스인이 줄어들었고 현재는 튀르키예 내 그리스인이 5000명 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이는 종교 기준으로 분류한 데 따른 수치라 실제 숫자로는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키프로스]]를 두고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튀르키예계 주민들과 충돌하고 이들을 학살하는 사례가 일어나자 튀르키예에서는 항의 차원으로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주민들 가운데 튀르키예 국적이 없는 이들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이 돌아가자 튀르키예의 극단주의자들이 보복을 외치며 이들을 괴롭혔고 결국 이스탄불의 그리스계 주민은 다수가 이스탄불을 떠나 [[그리스 왕국|그리스]]로 이주했다.[* 당시 추방된 이스탄불 내 그리스인들은 기본적으로 [[튀르키예 공화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추방되지 않았고(자국민을 자국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 웬만큼 막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구 오스만 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나 말소되어 사실상 [[무국적자]]와 그리스 국적만을 가지고 거주비자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또 추방 당시 부동산 등의 권리는 대부분 처분하고 추방길에 오른 경우가 많았으나 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추방 당시까지도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의 부동산은 몰수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다가 그리스-튀르키예 관계가 개선된 1990-2000년대 이후에 수리해서 임대를 주거나 다시 돌아와 거주하기도 했다. 또한 그리스 경제위기 당시 다시 튀르키예로 돌아온 그리스계 주민들도 있다.] 한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에게 해의 두 섬의 그리스인을 추방하지 않았던 것처럼 [[서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약 9만 명의 튀르키예인들은 추방되지 않았다. 이들은 그리스 정부에서 '튀르키예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대신 [[로잔 조약]]의 규정에 따라 트라키아의 '튀르키예인'들은 [[포마크인]][* Πομάκοι. [[오스만 제국]] 시절 [[이슬람]]으로 개종한 [[불가리아인]]에 기원을 둔 [[슬라브|슬라브계]] 무슬림 [[민족]]이다. 불가리아인이 이들의 기원인 고로 이들의 언어는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불가리아 남부 루프 방언과 동일하다.], 무슬림 [[집시]]들과 같이 하나로 묶어 '무슬림 그리스인'으로 분류 및 관리되고 있다. 그리스 대법원에서는 튀르키예인은 튀르키예 국적의 사람을 의미한다며 트라키아의 튀르키예인 [[소수민족]] 단체에 대해 '튀르키예인'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단 그리스 정부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트라키아 지방의 튀르키예인들을 비공식적으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튀르키예에서 추방된 정교회 '그리스인'들을 이 곳에 정착시키거나 트라키아 지방의 토지를 사는 그리스인들에게 저리 융자를 제공해 주는 등 트라키아 지방의 튀르키예 색채를 지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행해왔으며, 아울러 실질적으로 이 지방의 튀르키예인들은 포마크인[* 이쪽은 불가리아 본토에서도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 온 [[집시|롬인]]들과 한 데 묶여 박해당하고 거의 [[비국민]] 취급을 받았다. 또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그리스 내전]] 당시 주된 격전지였기 때문에 내전에서 희생된 이들도 많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당시에 대한 증언을 들어 보면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어|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1970년대]] 그리스의 민주화 이후에도 [[키프로스]] 문제 때문에 그리스 내 튀르키예인들은 이런저런 차별을 받았다. 예를 들면 민족적 의미에서 그리스인이 아니라고 규정된 사람들은 귀국을 보증하지 않으면 출국과 동시에 그리스 국적을 박탈하는 법이 [[1990년대]]까지 있었는데 주로 튀르키예인 등의 그리스 무슬림들이 대상이었다. [[https://www.loc.gov/law/help/greece-minorities/greece.php|링크]] 많이 나아진 21세기에도 그리스 정부와 그리스의 튀르키예인들은 앞서 언급한 '튀르키예인' 칭호 사용 금지 등 여러 갈등이 남아 있다. 현재도 그리스 인구의 1.3%[* 그리스 내 무슬림 중에서는 이러한 통계를 그리스의 반튀르키예, [[반이슬람]] 정서에 의해 축소된 통계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겉으로만 [[정교회]]로 개종한 척 연기하면서 이슬람 신앙을 [[일코|비밀리에 계속 유지하다가]] 훗날 무슬림으로 [[커밍아웃]]하는 경우도 있을 듯 싶다.]는 무슬림이며 이 중 절반 가량이 바로 서부 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이다. 위의 예외 사례와 별개로 제3국의 지배로 인해 인구 교환을 피해간 지역이 있었는데 바로 [[로도스 섬]]을 비롯한 [[도데카니사 제도]]와 [[키프로스]]다. 각각 [[이탈리아 제국|이탈리아]]와 [[대영제국|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도데카니사 제도는 [[그리스 왕국|그리스]]로 편입되었으나 그리스 정부가 현지의 튀르키예인을 추방하지 않았기에 도데카니사 제도는 그리스 내에서 아직도 [[튀르키예어]]가 제법 통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물론 그리스-튀르키예 간 갈등으로 인해 민족간의 싸움이 일어나서 많은 이들이 떠나기는 했지만 강압적인 추방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는 있었으며, 튀르키예 정부는 도데카니사 제도에 최대 15,000명 가량의 튀르키예인이 거주한다고 보고 있다.] [[키프로스]]는 다수 그리스계의 주도로 그리스와의 통합 운동이 일었으나 [[영국]]이 별개 국가로 독립시킨 후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대리전의 전장으로 고통받았다. 이 지역에 사는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는 구분하기 힘드며 그저 종교와 모어로 정체성을 찾는 듯하다. 즉 이는 튀르키예계와 그리스계가 오랜 세월의 상호교류로 두 민족간의 경계가 거의 없어졌음을 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